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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볼 때 그냥 훈훈한 코미디물인 줄 알았습니다. 진상 민원인 할머니와 원칙주의 공무원의 티키타카라니, 가볍게 웃고 끝날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영화 후반부에서 제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옥분 할머니가 왜 그토록 영어를 배우고 싶어 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된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2017년 개봉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나문희, 이제훈 주연의 작품으로, 단순한 감동 드라마가 아니라 위안부 피해자의 실제 증언 역사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 믿었던 제 실수 — 영화의 배경과 구조
영화 초반, 저는 솔직히 나문희 배우님이 연기한 옥분 할머니가 그냥 동네 진상 민원인으로만 보였습니다. 20년간 민원 건수만 8천여 건. 구청장이 다섯 번 바뀌는 동안 단 하루도 멈추지 않은 민원 행진이라니, 처음엔 그냥 "왜 저러지?"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습니다.
그 할머니 앞에 새로 발령받은 9급 공무원 박민재(이제훈 분)가 등장합니다. 민재는 FM식 원칙주의자입니다. 번호표 없이 오면 번호표부터 뽑으라 하고, 절차 없이는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인물이죠. 그 둘의 충돌은 처음에 코미디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서사 구조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단순히 세대 갈등이나 공무원 민원 해프닝을 그리는 게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영화는 내러티브 전환(narrative shift), 즉 관객이 특정 인물에 대해 가진 선입견을 중반부 이후에 완전히 뒤집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여기서 내러티브 전환이란, 앞서 쌓인 정보로 형성된 인식을 새로운 맥락으로 완전히 재해석하게 만드는 서사 기법입니다. 제가 옥분 할머니를 민원 진상으로만 판단했던 것, 딱 그 함정에 제대로 빠진 셈이었습니다.
이유를 모른 채 상황만 보고 사람을 판단했던 제 자신이 뒤늦게 부끄러워졌습니다. 그게 이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첫 번째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 20년간 누적 민원 8천여 건 — 단순 진상이 아닌 이유가 있었다
- 원칙주의 공무원 민재 vs 도깨비 할머니 옥분의 대립 구도
- 내러티브 전환 기법으로 관객의 선입견을 정면으로 뒤집는 구성
- 나문희, 이제훈, 김소진, 손숙 등 명품 배우진의 탄탄한 연기
영어를 배운 진짜 이유 —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과 언어의 장벽
영화에서 옥분 할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영어 학원에 등록하고, 민재에게까지 영어를 가르쳐달라고 매달립니다. 저는 처음에 그 장면이 그냥 웃기려고 넣은 에피소드인 줄 알았습니다. "It's a steal(너무 싸서 훔친 거나 다름없다)"을 배우며 허둥대는 할머니 모습이 실제로 꽤 웃겼으니까요.
그런데 옥분 할머니가 영어를 배운 목적은 단순한 자기 계발이 아니었습니다. 그 목적은 미국 의회 청문회(Congressional Hearing)에서 직접 증언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의회 청문회란, 미국 연방 의회가 특정 사안에 대해 증인을 불러 직접 진술을 듣는 공식 절차를 말합니다. 위안부 문제를 국제 사회에 알리기 위해 실제로 이 자리가 활용된 역사가 있습니다.
언어 장벽(language barrier)이라는 개념이 이 영화에서 얼마나 무겁게 작동하는지, 저는 후반부에 가서야 제대로 실감했습니다. 언어 장벽이란 단순히 말이 통하지 않는 불편함이 아니라, 자신의 피해 사실을 세계에 알릴 수 없게 막는 구조적 장애물입니다. 옥분 할머니는 그 장벽을 스스로 무너뜨리기 위해 70대의 나이에 영어를 공부한 것입니다.
실제로 2007년 미국 하원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과를 촉구하는 결의안(H.Res.121)을 채택했습니다(출처: 미국 의회 공식 기록). 이 결의안이 통과되는 데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직접 증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영화는 그 역사적 순간을 옥분 할머니의 이야기에 고스란히 녹여냈습니다.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눈물이 쏟아진 건, 단지 슬퍼서가 아니었습니다. 평생 쌓인 억울함을 외국어 한 마디 한 마디에 담아 직접 말하려 했던 그 의지가, 그 절박함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지금도 유효한 이유 — 기억과 증언의 사회적 의미
〈아이 캔 스피크〉가 2017년 개봉 당시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높은 평가를 받은 데는 단순히 연기력이나 감동 코드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 영화는 역사적 트라우마(historical trauma)를 다루는 방식 자체가 달랐습니다. 역사적 트라우마란, 특정 집단이 집단적으로 겪은 폭력이나 억압이 개인과 사회 전체에 장기적으로 남긴 심리적·사회적 상처를 의미합니다.
영화는 위안부 피해자의 이야기를 무겁고 직접적으로 들이밀지 않습니다. 대신 코미디와 따뜻한 인간관계로 관객을 먼저 끌어들인 뒤, 후반부에서 그 무게를 온전히 전달합니다. 저는 이 접근 방식이 매우 영리하면서도 진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부터 비장하게 나갔다면, 아마 저도 포함해서 많은 관객들이 심리적 방어를 먼저 세웠을 겁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현 정의기억연대) 등의 기관을 통해 꾸준히 국제 사회에 알려져 왔습니다(출처: 한국정의기억연대). 그럼에도 언어와 정치의 장벽은 여전히 존재하고, 직접 증언의 힘은 어떤 외교 문서보다 강력합니다. 영화는 바로 그 지점을 건드립니다.
제 경험상, 이런 역사적 사실을 이 정도 밀도로 담아내면서도 관객에게 "봐야 한다"는 의무감이 아니라 "보고 싶다"는 감정을 먼저 심어주는 영화는 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한국 사람뿐 아니라, 이 역사를 전혀 모르는 외국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전달될 수 있는 서사적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국제 상영이 이루어진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억하는 것이 곧 저항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 저항을 가장 인간적인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아이 캔 스피크 실화 기반인가요?
A. 영화는 실제 역사적 사건인 2007년 미국 하원 위안부 결의안(H.Res.121) 채택 과정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특정 인물을 1:1로 재현한 것은 아니지만, 피해 할머니들이 미국 의회에서 직접 영어로 증언했던 실제 장면을 모티프로 삼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실화 기반"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Q. 영화에서 옥분 할머니가 영어를 배우는 이유가 뭔가요?
A. 단순한 취미나 자기 계발이 아닙니다.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위안부 피해자로서 자신의 경험을 직접 영어로 증언하기 위해서입니다. 영화 전반부에서는 이 이유가 드러나지 않다가 후반부에 가서야 공개되는 구조라, 그 순간의 충격과 감동이 배가됩니다.
Q. 이 영화 너무 무겁지 않나요? 코미디라고 들었는데.
A. 전반부는 실제로 꽤 웃깁니다. 공무원 민재와 민원 할머니 옥분의 충돌 장면은 코미디 영화처럼 경쾌하게 흘러가고, 두 사람 사이에 쌓이는 정도 자연스럽습니다. 역사적인 메시지는 후반부에 집중되어 있어서, 무겁다는 느낌보다는 감정이 차곡차곡 쌓이다가 터지는 구조입니다.
Q. 나문희 배우 연기가 얼마나 대단한가요?
A. 전반부의 코믹한 민원 할머니와 후반부의 역사적 증인을 같은 인물 안에서 설득력 있게 연기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특히 의회 증언 장면에서의 표현력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감정을 혼자 끌어내는 수준입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나문희 배우의 연기가 크게 조명받은 작품입니다.
결론
〈아이 캔 스피크〉는 제가 영화를 보면서 처음엔 웃다가, 중간엔 따뜻하다가, 끝에서 완전히 무너진 몇 안 되는 작품입니다.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겉모습만 보고 판단했던 저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경험, 그게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울림이었습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일제강점기 위안부 피해자들의 역사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은, 의무감보다 이 영화처럼 인간적인 서사로 전해질 때 더 오래 남습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가능하면 아무 정보 없이 보시길 권합니다. 후반부의 충격이 제대로 전달되려면 전반부의 웃음이 먼저 필요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