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플러스 국내 1위를 달리는 영화가 12세 이상 관람가 호러라는 사실, 솔직히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재생 버튼을 누르고 5분도 안 돼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감정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병맛 코미디라는 장르가 이 정도로 호불호를 가를 수 있다는 걸,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실감했습니다.디즈니 플러스 1위, 첫 5분의 당혹감스트리밍 플랫폼 1위 콘텐츠라는 타이틀에는 일종의 기대치가 따라붙습니다. 적어도 대중적인 완성도는 되겠구나 하는 암묵적인 전제 말입니다. 그런데 영화 《교생실습》은 시작부터 그 전제를 가볍게 무너뜨렸습니다.화면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이 유치하면서도 낯설었습니다. 정확히는 애니메이션을 실사로 찍은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캐릭터들의..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진로그룹 매각 사태를 모티브로 삼은 영화 《소주전쟁》이 2025년 5월 30일 개봉했습니다. 저도 처음엔 소주 업계 내부 이야기겠거니 싶었는데, 틀자마자 생각보다 훨씬 묵직한 시대의 민낯이 펼쳐졌습니다. 벌처 펀드, 적대적 M&A, 그리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국내 조력자들까지. 기업 드라마인 줄 알았던 영화가 그 시대 전체를 씁쓸하게 담아내고 있었습니다.IMF 배경이 담은 시대의 민낯 — 벌처 펀드와 적대적 M&A영화의 출발점은 1997년 외환위기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냥 소주 회사 살리는 이야기인 줄 알고 틀었다가, 첫 장면부터 외국계 투자사가 위기 기업을 노리는 구조가 나왔거든요.글로벌 투자사 솔킨은 국보 소주에 '자문사'를 내세워 접근합니다. 여기서 ..
솔직히 말하면, 1편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이 영화가 그냥 좀 정신없는 패션계 직장 드라마인 줄만 알았습니다. 앤디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겨우 버티는 모습이 숨 가빴거든요. 그런데 20년 만에 돌아온 후속편을 보고 나서는 전혀 다른 감정이 남았습니다. 같은 캐릭터들인데 이렇게나 달라질 수 있구나, 그리고 이게 단순한 속편이 아니라 시대 자체를 담은 이야기구나 싶었습니다.20년 만에 돌아온 미란다, 달라진 게 맞을까요?1편의 미란다 프리슬리는 말 그대로 압도적인 존재였습니다. 코트를 툭 던지면 비서가 받아야 했고, 독설 한 마디면 사람이 무너졌죠. 그런데 2편에서 처음 미란다를 다시 마주쳤을 때 저는 솔직히 살짝 낯설었습니다. 예전 같은 서슬 퍼런 카리스마가 조금 옅어진 느낌이랄까요.이게 캐릭터가 약..
류승완 감독의 영화 '휴민트'는 국정원 블랙요원과 북한 국가보위성 요원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맞붙는 첩보 액션물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이름은 조인성도, 신세경도 아니었습니다. 박정민이었습니다.박정민의 존재감 — 주인공이 따로 없었습니다일반적으로 첩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배우는 주인공 역할을 맡은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달랐습니다. 포스터 중앙에 선 건 조인성이었지만, 극장을 나오는 내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은 얼굴은 박정민이었으니까요.박정민이 연기한 박건은 블라디보스토크에 파견된 국가보위성 요원입니다. 여기서 국가보위성이란 북한의 정치보위부 성격의 비밀경찰 기관으로, 쉽게 말해 북한판 정보기관입니다. 불법 밀입국과 인신매매 혐의자..
알고리즘이 틀어준 영화를 아무 정보 없이 봤다가 끝나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던 경험, 저만 있는 건 아닐 겁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가 딱 그랬습니다. 신을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믿음이 깊을수록 더 빠르게 무너집니다. 트라우마, 빗나간 신앙, 그리고 선의에서 출발한 복수가 어떻게 비극의 연쇄를 만들어내는지 — 제가 본 영화 중에서 이 구조를 이만큼 냉정하게 보여준 작품은 드물었습니다.전쟁이 심어놓은 트라우마 — 윌러드의 신앙은 왜 광기가 됐나일반적으로 신앙은 사람을 안정시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윌러드라는 인물을 보면서 그 전제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윌러드는 2차 세계대전 참전 후 고향으로..
크리스마스 영화라고 해서 따뜻한 로맨스를 기대했다면, 제목에 완전히 낚인 겁니다. 영화 은 시작부터 끝까지 한순간도 숨을 편히 쉬게 놔두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던 건, 결말이 그만큼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줬기 때문입니다.크리스마스 이브에 벌어진 비극, 그 배경과 맥락영화의 출발점은 단순합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한 소년의 동생이 죽습니다. 문제는 그 죽음이 '단순 사고'로 처리됐다는 것입니다. 소년 일우는 동생 월우의 마지막 통화에서 들었던 목소리들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목소리들을 쫓아 소년원으로 들어갑니다.이 영화가 다루는 건 단순한 폭력 서사가 아닙니다. 사회학에서 말하는 낙인 효과(Stigma Effect)가 핵심 배경으로 깔려 있습니다. 낙인 ..
사극은 지루하다고 생각하셨다면, 혹시 그 판단을 너무 일찍 내린 건 아닐까요? 저도 한동안 그랬습니다. 그러다 반신반의하며 틀었던 이 생각보다 훨씬 탄탄한 이야기를 품고 있어서 솔직히 놀랐습니다. 공납 비리, 신분제도, 천주교 박해라는 무거운 역사가 코믹 추리극 안에서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날 수 있다는 게 예상 밖이었습니다.조선판 자금세탁, 공납 비리의 구조영화를 처음 볼 때 "그냥 웃기는 사극이겠거니" 했는데, 사건의 뼈대가 드러나는 순간 자세를 고쳐 앉게 됐습니다. 단순한 살인 미스터리가 아니라 조선 후기의 구조적 부정부패가 사건의 출발점이었으니까요.사또는 공납(貢納)을 중간에서 빼돌려 사복을 채우고, 이를 고발하려던 도화를 살해합니다. 여기서 공납이란 지방 백성들이 지역 토산물을 국가에 바치던 조세..
영화 리볼버를 다 보고 나서 든 첫 생각은 "내가 지금 뭘 본 거지?"였습니다. 전도연, 지창욱, 임지연이라는 조합에 기대치가 높았던 만큼, 이야기가 끝까지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았을 때의 당혹감도 컸습니다. 결국 유튜브 해설을 찾아봤고, 그 과정을 거쳐서야 비로소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임석용의 죽음, 황정미라는 인물, 그리고 이 영화의 서사 구조가 왜 관객을 당혹스럽게 만드는지를 짚어본 기록입니다.임석용은 왜 죽었나 — 해설 없이는 연결이 안 되는 죽음영화를 보는 내내 제가 가장 집중했던 건 임석용이 왜, 어떤 이유로 죽었는가였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그 답을 관객에게 직접 내밀지 않습니다. 총에 맞기 직전, 임석용이 웃는 표정이 클로즈업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웃음..
릴스에서 아이유의 대사 한 줄에 멈췄습니다. "이 미친 세상에 미친년처럼 살면 그게 정상 아닐까?" — 이 문장 하나 때문에 다시보기를 찾아 영화를 틀었습니다. 그냥 웃기려고 던진 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들어보면 반박이 안 됩니다. 이게 이병헌 감독 영화의 무기입니다.영화를 계속 보게 만든 건 스토리가 아니라 대사였습니다일반적으로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건 탄탄한 스토리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 영화는 달랐습니다. 다음 장면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다음 대사가 궁금해서 계속 보게 됐습니다. "또 뭔 말을 칠까" 싶어서 멈추질 못했습니다.영화의 설정 자체는 단순합니다. 동료 방해로 이미지가 실추된 축구선수 홍대(박서준)가, 이미지 메이킹 전문가 소민(아이유)의 전략에 따라 홈리스 월드컵 국가대..
오케이 마담 2 광고를 보고 1편도 안 봤다는 사실이 갑자기 걸렸습니다. '1이 재밌으면 2도 보자'는 생각으로 티빙에서 바로 틀었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평범한 꽈배기 가게 아줌마가 전직 요원이라는 설정이 이렇게까지 설득력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줄거리 구조부터 액션 연출 방식, 코미디 배합 비율까지 뜯어보면 이 영화가 왜 2편까지 만들어졌는지 이해가 됩니다.줄거리 — 평범한 가족에 숨겨진 첩보 설정영천시장에서 꽈배기 집을 운영하는 미영, 컴퓨터 수리업체를 하는 남편 석환, 딸 나리. 전형적인 서민 가족처럼 보이지만 이 세팅 자체가 이미 복선입니다. 석환이 음료수 병뚜껑 이벤트에 당첨돼 하와이 여행을 가게 되면서 이야기가 굴러가기 시작하는데, 미영은 여행보다 세탁기가 더 급하다며 반대합니..